천주교 박해로 몸살을 앓고 있던 19세기 초, 중국과 일본 사이의 바닷길 가운데 놓여 있던 섬 ‘제주’는 신앙을 몰랐습니다. 죽은 나무 거꾸로 타는 뱃사람에게 바다는 생존과 죽음의 양면이었습니다. “바다 고운 것과 여자 고운 것은 믿지 말라.”는 뱃사람들 속담 처럼 바닷길은 언제나 변화무쌍했습니다. 그럼에도 바다를 건너야만 하는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새로운 만남을 맺어주고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습니다. 김기량은 표류인입니다. 1857년 표류에서는 낯선 홍콩 땅에서 교리를 배우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는 중국을 남에서 북으로 거슬러 올라가 의주를 거쳐 돌아옵니다. 그리고 가슴에 품고 온 신앙의 씨앗을 제주 땅에 심었습니다. 1864년 표류에서는 일본 규슈에 표착하여 나가사키에서 1년여를 지내고 대마도와 왜관을 거쳐 제주로 귀환합니다. 바다에서 살아 돌아온 행운의 사나이 김기량은 1866년 10월 무역차 바다로 나섰다가 통영에서 체포되어 1867년 땅에서 순교합니다.
제주에 처음으로 믿음의 씨앗을 뿌린 ‘제주의 사도’이자 최초의 순교자인
김기량 펠릭스베드로. 2001년 그에 관한 귀중한 사료들이 대거 발굴되면서,
제주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는 2002년 1월부터 김기량 시복시성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2003년 1월 조천 성당에, 2005년 4월에는 그의 고향인 함덕에 순교현양비를
세웠으며 2006년 9월 10일 김기량 순교 140주년 기념 신앙대회가 열리고,
2007년 11월부터 그의 신앙과 순교정신을 현양하고 시복시성을 위해
전 신자들이 날마다 기도해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14년 8월 16일
김기량 펠릭스베드로는 영광스러운 복자품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김기량 순교기념관은 천주교제주교구와 한국교회사연구소의 협력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제주시 조천읍일주동로 1216
T. 010-5588-5749 (기념관 도슨트 선교사)